마음공부 & 수행 & 명상

[스크랩] 마음을 닦아나가는 길

soomini20 2008. 3. 22. 13:11

 

 
 

 

마음을 닦아나가는 길

우리는 가끔 청소를 하다보면 이런 것을 보게 됩니다.

너무 많은 때가 낀 곳은 때가 낀 것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때가 본체와 하나가 되어 그것이 때인지도 모르게 됩니다.

 

엔트로피의 법칙(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한다) 때문인지

무엇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먼지가 내려앉고 때가 끼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에도 그런 일이 생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지불식 간에 때가 끼게 마련이지요.

 

마음을 닦는다는 측면에 있어서 우리는 마음닦기의 달인이었던 슈퍼스타

붓다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알고있는 한, 어떤 신빙성 있는 조사 결과를 확인한 바로는

열반에 드신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많은 숫자의 깨달은 이와 제대로

마음을 닦은 선인들이 불교계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최근 삼매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공부와 수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불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이지만 간단하게나마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불교의 가장 근본에 사성제와 팔정도가 있습니다.

사성제란 고/집/멸/도, 즉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원인(集)과 괴로움의 소멸(滅)과

소멸방법(道)이 있다는 것이고 그 소멸방법이 팔정도가 됩니다.

 

정견(正見)은 바른 견해로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있는 그대로 라는 말을 쓰지만,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특별한 수행의

노력 없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무의식 차원에는 항상 신념, 무의식 차원의 깊은 생각과 같은 것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과 고정된 현실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벗을 수 없이 씌여져 있는 색안경이라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만질 수도 존재감을 알 수도 없지만 그것은 이미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정견이 가능할 때 정사유(正思惟) - 바른 사유가 가능해지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언(正語), 정업(正業) - 바른 행동, 정명(正命) - 바른 생활과 직업,

정정진(正精進) - 바른 노력, 정념(正念)은 바른 생각, 정정(正定) - 바른 수행이

비로소 가능해 집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정견이 되기 위해서는 그냥 그자리에서 바로 보고자 하는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으며, 평소의 부단한 수행이 따라주어야 합니다.

이 수행의 방법에 계정혜 (戒定慧 - 계율, 선정, 지혜) 삼학이 존재하며

이는 탐진치(貪瞋痴 - 탐욕, 성냄, 어리석음) 삼독을 타파하는데 그 목적이 있고,

삼학과 삼독은 서로 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명상 등에 관심이 많은 어떤 분들은 이러한 의문이 들지도 모릅니다.

탐진치 삼독과 같은 것은 도덕적인 규범이 아니냐, 고도로 발달된 명상방법 등을 통한

수행으로 우리 영성을 진화시켜 나가면 되지, 케케묵은 도덕, 계율 같은 이야기를

지금의 시대에 와서 굳이 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말입니다.

 

이에 관해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본래 광명이고, 관점에 따라서 궁극적인 행복이라 말할 수도, 혹은 

신성, 불성, 유일자, 하느님 등으로 표현할 수 있으나, 그 본래의 순수하디 순수한 것이

구름에 가려 빛을 보이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본성을 가리고 있는 구름이 바로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탐진치 삼독인 것이며

이 삼독이 모여 에고(개아, 타와 분리된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정혜 삼학을 닦는데 있어서의 몇가지 원칙 중 하나가 계, 정, 혜를 순서대로 닦는다는

것입니다. 즉 팔정도인 계율을 지키는 것이지요(기독교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10계명이

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계율을 지키는 것은 진심으로 마음을 닦는 것이 됩니다.

삶 그 자체가 수행이라 할 수 있음은, 계율의 지킴은 삶을 통해서만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무엇을 함에 있어서 그 참목적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율을 지킨다는 것의 참목적은 마음을 닦는 것이고, 마음 닦음의 중심에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참회"라 부르고, 기독교에서는

"회개"라 합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 카톨릭에서는 이렇게 말하지요.

 

이렇게 우리 본성을 둘러싼 먹구름들을 참회와 회계, 그리고 계율을 통해 걷어내고 나면

저절로 선정(계, 정, 혜 삼학 중의 두번째)이 드러납니다.

이 선정을 다른 말로 삼매, 사마디라고 부릅니다.

 

삼매에 가까이 다가갈 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특이한 체험들을 하게 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이런 일들이 잦았던 것 같습니다.

맑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본다든지,  사람의 주변에 퍼진 오라장 같은 것이 보인다든지,

사람이 시커멓게 그림자 내지 껍데기만 남는 것을 본다든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

형상이 이리 저리 모습을 바꾸다 사라진다든지, 의식이 순식간에 뒤로 한걸음 물러나면서

상황의 전체적인 모습과 자신의 뒤통수까지도 보게 된다든지(생시에서도 꿈에서도),

세상이 갑자기 느릿느릿 해진다든지, 온세상이 빛으로 작열하면서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든지...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신 분은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진정으로 나아갈 방향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런 체험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은 보이는 대로,

평소 늘 지각하던 대로의 세상이 아니며,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환상을

(여러 선인들의 말씀처럼!) 경험하면서 그것을 현실이라 여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삼매의 단계라는 것조차도 8-9단계까지 너무나 깊이 이어져 있습니다.

 가야할 길이 멀지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마음을 닦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해보도록 합시다.

우리가 (거의) 매일 청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때 역시도 매일 닦아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 다시 때가 끼게 되고, 그 때가 일상화 되어버려서 때가 끼었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살아가게 되고야 말 것입니다.

평상시 마음의 때를 닦는 방법은 계율과 참회이고 그 근본 목적은 같다는 말씀을 앞에서

드렸습니다.

계율을 지켜나가는 것과 일상적인 용어 중에서 가장 근접한 것이 '습관' 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습관은 아마도 <자기개발>의 의미를 넘어서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닦는 습관'

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요.

마음을 매일 닦는 습관을 들이면 마음의 때가 벗겨집니다.

마음의 때가 벗겨지면 순수 본성의 빛이드러납니다.

그 빛이 곧 궁극적인 행복과 사랑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 카페에서 실시하고 있는 성공의 법칙 워크샵은 말하자면 마음을 닦고,

행복한 습관을 들이는 1단계 과정입니다.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한 2-3단계 과정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감으로써 더 큰 행복과 궁극적인 희열, 그리고 평화를

일상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위해서도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마음을 닦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2007. 7.  27.


세상 모든 이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날을 꿈꾸며...


- 전용석(「아주 특별한 성공의 지혜」. 「나를 사랑하며 산다는 것」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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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주 특별한 성공™
글쓴이 : 사랑의마법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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